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스이 요시토 (문단 편집) == 실종 후 사망 확인까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ureshin1우스이요시토추모1.jpg|width=480&height=272]] [[파일:kureshin2우스이요시토추모2.jpg|width=480&height=272]]}}} || || {{{#ffffff '''우스이 요시토의 사망 확인 이후 방영된 [[짱구는 못말려|{{{#fff 짱구는 못말려}}}]]의 추모자막'''}}}[* 우스이 요시토의 사망 확인 이후에 방영된 2009년 10월 16일 681화의 부분이다. 단조로운 배경과 [[명조체]] 자막, 별도의 음악이 삽입되지 않은 추모 메세지 때문에 당시 시청하고 있었던 시청자들은 섬뜩함을 느꼈었다는 후일담이 나왔다.] || || [크레용 신짱] 원작자 우스이 요시토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br]진심으로 애도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희 방송은 앞으로도 계속 할 예정이오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2009년]] [[9월 11일]] [[군마현]] 아라후네산(해발 1423m)으로 등산을 하러 출발한 뒤에 실종되었다. 실종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군마 경찰 측이 사건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고자 주변인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아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음이 밝혀졌고 작가 본인도 상당히 우호적이라고 알려졌다. 작가 우스이 요시토의 모친은 아들이 신흥종교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바라보아 우스이 요시토와 모친이 싸운 적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순히 [[등산]]을 가서 실종된 만큼 종교단체와의 연관성은 적은 것으로 보는 분위기. 그런 가운데 8일만인 [[9월 19일]] [[http://pds15.egloos.com/pmf/200909/20/77/d0048777_4ab62a6f70366.jpg|120미터 높이의 가파른 절벽]][* 단, 이 사진은 단순히 절벽을 조금 멀리서 찍은 사진이다.] 아래에서 등반하고 있던 등산객에 의해 작가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 발견 이후 곧바로 수습을 하려 했으나 현장 경사가 40에서 60도에 달하는데다 헬기를 통한 수습이 어려워 이튿날인 20일에 시신을 수습하고 확인 작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본인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사이에 몇 몇 [[언론]]에서는 사람들을 낚으려는 듯 "짱구 작가 사체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기도. 결국 치형대조 결과와 가족의 확인절차를 통해 신원불명의 시체가 우스이 요시토 본인으로 판명되었다.[* 약 120미터 높이의 절벽에서 추락했기에 옷이 찢어지고 전신에 골절이 발생했으며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치형대조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밝혀진 사인은 소지품인 [[카메라]]에 찍힌 사진에 의하면[* 카메라에 촬영되어 있는 마지막 사진은 9월 11일에 촬영된 것인데, 벼랑 아래쪽을 보고 있는 사진이었다고 한다.] 벼랑 밑의 풍경을 찍다가 [[실족사]]한 걸로 보고 있다고 한다. 등산로 자체는 완만한 편인데 사진을 찍으려고 험한 곳에 가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술했듯이 약 120m 아래로 추락했다고 하며 국내 방송에서도 해당 사건이 [[위기탈출 넘버원]]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재연극에서의 [[고인드립|지나친 희화화 때문에 사고 자체의 안타까움이 굉장히 변질]]됐다. 팬들이 보면 기분 나쁠 정도.(등산하다가 개미를 보고 이상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으로 표현) 반면 애니메이션을 정식방영하는 [[투니버스]]에서는 편성PD [[강유미(PD)|강유미]]가 9기 첫회에서 해당 사건을 추모하는 소식을 알렸고, [[초시공! 태풍을 부르는 나의 신부]]의 엔딩 크레딧에는 모두가 정면을 보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는 '우스이 요시토 선생님을 추모하며.'라는 말로 그를 추모했다. 그 외에 과거 정식방영을 했던 SBS와 [[보도전문채널]]인 [[YTN]]에서는 도쿄 특파원의 리포트로 해당 소식을 전했었으며([[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646250|SBS]],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0266980?sid=104|YTN]]), [[MBC]]에서도 [[단신(동음이의어)#s-2|단신]]으로 사망 소식을 보도했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9/nwdesk/article/2446535_30553.html|#]] 참고로 우스이 요시토 사망 이후 모친은 며느리보다 일본 내에서 더한 상당한 비판을 받았는데, 작가의 모친과 작가가 싸우게 된 원인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것에 모친이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종교단체에 기부하는 것에 작가의 어머니가 간섭할 권한은 없었고 되려 작가의 모친이 그동안 작가가 벌어들인 인세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싸움의 원인이 모친이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작가를 간섭한 것이라는 것이 일본 내의 주류 의견이었다. 작가가 모친과 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기에 싸움의 원인이 알려졌으며 모친이 유산문제 관련으로 잡음을 일으키면서 '''아들을 잃은 불쌍한 노인에서 아들을 잡아먹은 마녀라는 평을 받으며, 모친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일본 내에서 맹비난을 당했다.''' 기본적으로 우스이 요시토의 유산인 크레용 신짱의 저작권 및 인세는 배우자인 아내와 자녀들에게 가는 것인데도 이 모친이 아들이 자신에게 일임했다는 위임장을 공개했으나, 실제 작가가 위임했는지 명확하지 않아 기각되면서 [[사문서위조]] 혐의까지 받아 일본 내에서 [[사이비]] 논란이 있는 여호와의 증인도 문제지만 우스이 요시토의 어머니는 그보다 더 막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즉, 우스이 요시토의 모친은 아들을 돈줄로 보고 사치를 일삼다가 아들이 (사이비 논란이 있다지만) 종교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혼을 내는 등 편협하게 굴다가 아들이 죽고서는 그 사실이 드러나 본인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한일 양국 팬덤에서 전혀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자업자득]]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현재는 그의 딸들과 제자들이 우스히 요시토의 명의를 이어받아 신 크레용 신짱을 연재하고 있다.''' 애니판은 원작 연재 시절부터 오리지널 에피소드가 많았고, 제작진들도 신짱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할지 고려해서 제작한다고 한다. 이후 [[픽시브]]에는 우스이 작가를 추모하는 그림들이 올라왔으며 天国へ漫画を描きに行った男(천국으로 만화를 그리러 간 남자)라는 [[http://www.pixiv.net/search.php?s_mode=s_tag_full&word=%E5%A4%A9%E5%9B%BD%E3%81%B8%E6%BC%AB%E7%94%BB%E3%82%92%E6%8F%8F%E3%81%8D%E3%81%AB%E8%A1%8C%E3%81%A3%E3%81%9F%E7%94%B7|태그가 생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